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로 바로가기 카피라이트 바로가기

전문가 칼럼

공지사항 뷰
치매, 이제 희망을 이야기합시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5-08
조회 43609

치매, 이제 희망을 이야기합시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동영

 

요즘 어르신들 사이에서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딱 2~3일만 앓고 4(死)하길 바란다는 뜻)'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이다. 오래는 살되 죽기 직전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이다. 노인들께 오래 살게 되었을 때 가장 두려운 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열 분 중 여덟 분은 주저 없이 “치매”라고 대답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치매 빈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60대 노인의 경우 약 1~2%가 치매 환자이지만, 80대에 이르면 약 20~30%의 노인이 치매를 앓게 된다. 90세, 100세까지 살게 된다면? 적게 잡아 절반 이상이 치매 환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의 근저에는 치료되지 않는 병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정말 치매는 치료될 수 없는 병인가? 치매는 다양한 병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 원인 질환에 따라 치료나 예후도 달라진다. 약 10~15%의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30% 정도는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진행을 막고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전체 치매 중 50~60%를 차지하는 퇴행성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이다.

1993년 타크린이라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처음 등장했다. 당시 이 약은 어둠 속에서 찾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뇌 속의 콜린은 기억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인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는 이 물질의 농도가 낮아진다. 지금 병원에서 처방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대부분 이 콜린 기능을 향상시키는 작용을 통해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약을 쓰면 분명 증상을 호전시키거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이같이 콜린 기능을 올려주는 효과만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99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많은 치매 전문가들을 흥분시키는 논문 한편이 발표되었다. 백신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고 예방까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동물실험 논문이었다. 현대의학은 백신을 사용하여 각종 병원균을 손쉽고 저렴하게 예방해왔다. 그런데 병원균이 아닌,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질환을 백신으로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개념은 정말 획기적이다. 안타깝게도 곧 이어 시행된 첫 번째 임상시험은 심각한 부작용의 출현으로 중단되었다. 잔뜩 부풀었던 기대를 잠깐 접어야 했지만 희망이 완전히 꺾긴 것은 아니다. 현재 부작용을 개선한 여러 백신이 임상시험 중에 있다. 백신 이외에도 알츠하이머병의 완치를 목표로 하는 여러 가지 치료제들에 대한 임상시험이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희망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의 최종 확진은 환자가 사망한 뒤 부검을 해서 뇌 조직을 현미경으로 봐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2004년 미국 신경학연보에 살아있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를 사진을 찍어 뇌 조직에 침착 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병리)을 보여주는 영상기법이 보고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에서 병을 확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방법이 임상에 적용되면 치매 증상이 없는 사람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조기에 진단한다면 그 만큼 치료 효과도 좋다.

최근에 급물살을 타고 있는 사회적인 노력도 큰 희망을 갖게 한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서울대학교병원과 손잡고 치매 인식 개선, 예방, 조기진단 및 치료비 지원, 인지재활 프로그램 시행, 환자 상태 별 적정 관리서비스 제공, 실시간 치매 종합정보제공 등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시행하는 ‘치매통합관리’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다른 시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존의 시설 수용중심의 치매관리에서 벗어남으로써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회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시키려는 노력이다.

치매는 분명히 치료나 예방이 쉬운 병은 아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고 이제는 좀 더 자신 있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조만간, 우리 모두의 바램(?)인9988234를 이루는 데 적어도 치매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전글 다음글
이전글 누구도 걸리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 치매!
다음글 치매 어르신의 행동 문제들, 치료가 가능할까요?(성수정)

목록